난정서(蘭亭敍)
왕희지
난정서는 천하 제일의 행서(行書)로 여겨진다.
진(晉)나라 목제 영화 9년(353)년 3월 3일에 왕희지는 사안
41명과 함께 회계의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성대한 계사를 거행하였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면서 시를 지었는데
당시 나이 51세인 왕희지는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잠견지(蠶繭紙)에 서수필(鼠鬚筆)을 사용하여
단숨에 천고의 명작이라고 알려진 [난정서]를 썼다.
전문은 모두 28행으로 전체의 글자수는 324자이다.
전체가 굳세고 아름다작우면서도 표일한 맛이 충만되고,
형세의 변화가 무궁하며
행서에서 볼수 있는
기복과 변화, 강한 리듬감, 형태의 다양한 변화, 점획의 서로 상응하는 것들이
충분히 표현된 작품이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왕희지의 난정서는
그의 7대손인 지영(智永)에게 전해졌으며,
지영이 다시 제자인 변재(辨才)에게 이를 물려 주었다.
당 태종은 어사인 소익을 변재가 있는 곳으로 파견하여
그를 속여서 [난정서]를 취한 다음
구양순, 저수량, 우세남등에게 임모를 하도록 명령하였다.
진본은 당태종의 부장물이 되었으며
지금 전해지는 것은 당나라때 임모본이 전해진다.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
于會稽山陰之蘭亭 修계事
也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
영화구년 계축년 늦은 봄 초승(3월 3일)에
회계산 북쪽 난정에 모였는데 계제사를 지내기 위함이다.
많은 현인들이 다 모이고 젊은이 나이 많은 이들이 모두 모였다.
이곳은
有崇山峻嶺 茂林脩竹 又有淸流激
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雖無絲竹管絃之
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
是日也 天朗氣淸 惠風和暢 仰
높은 산 험준한 봉우리들이 있고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다.
또 맑은 시냇물과 여울이
정자의 좌우를 띠처럼 서로 비치며 둘러싸고 있다.
시냇물을 끌어들여
술잔을 띠울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를 만들어 놓고
차례로 줄지어 둘러앉았다.
비록 거문고나 피리같은 음악이 있는 성대한 연회는 아닐지라도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수 읊으니
또한 그윽한 감정을 펴기에 족하다.
이날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았으며
은혜로운 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우러러
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所以遊目騁懷 足以極視聽之
娛 信可樂也 夫人之相與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雖
趣舍萬殊 靜躁不同 當其欣
우주의 광대함을 보고 고개숙여
만물의 무성함을 살피면서
자유롭게 눈을 놀리며
마음가는 대로 생각을 달려보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을 다할 수 있게 되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며
한평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이는 회포를 끌어내어
벗들과 한방에 마주앉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기에게 기탁되어 있는 사상을 근거로
육체의 밖에서 마음대로 놀게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람들은 비록 취향이 만가지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같지 않으나
於所遇 暫得於己 快然自足不
知老之將至 及其所之旣倦 情
隨事遷 感慨係之矣向之所
欣 면仰之間 以爲陣迹猶不
能不以之興懷 況脩短隨化 終
期於盡 古人云 死生亦大矣 豈
저마다 자신이 취한 경우가 기쁘게 느껴지는 때에는
잠시나마 자기 뜻을 얻어 스스로 흡족하여장차
노년이 다가오리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낸다.
그러나 그가 즐기는 일에 권태를 느끼거나
또 자신의 감정이 그 일에 따라 옮기어 가면서 변하게 되면
여러가지 감회가 이어 나온다
옛사람이 말하길
"죽고사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다." 고하였으니
이 어찌
不痛哉 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未嘗不臨文嗟悼 不
能諭之於懷 固知一死生爲虛
誕 齊彭상爲妄作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悲夫 故列
가슴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옛사람들이 가졌던 감회를
일으켰던 까닭을 알게 될적마다
마치 두 개의 부절을 하나로 맞춘 듯
내 생각과 똑같은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 고인의 문장을 대할 때마다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고
마음을 달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죽고 사는 일이 같은 일이라는 말이 허황되고
팽조와 같이 오래사는 것과
어려서 죽어버리는 것이 같다고 하는 말
역시 함부로 지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지금사람들을 볼 때도
또한 지금 우리가 옛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픈 일이다.
그래서
敍時人 錄其所述 雖世殊事
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後之覽
者 亦將有感於斯文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고 그들의 시들을 수록하였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도 변하겠지만
감회를 일으키게되는 이치는 같은 것이다.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 문장에 대하여 감회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난정서 전문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於會稽山陰之蘭亭 修?事也
영화구년 계축년 늦은 봄 초승(3월 3일)에 회계산 북쪽 난정에 모였는데 계제사를 지내기 위함이다.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峻嶺 茂林脩竹
많은 현인들이 다 모이고 젊은이 나이 많은 이들이 모두 모였다.
이곳은 높은 산 험준한 봉우리들이 있고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다.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또 맑은 시냇물과 여울이 정자의 좌우를 띠처럼 서로 비치며 둘러싸고 있다. 시냇물을 끌어들여 술잔을 띠울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를 만들어 놓고 차례로 줄지어 둘러앉았다.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
비록 거문고나 피리같은 음악이 있는 성대한 연회는 아닐지라도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수 읊으니 또한 그윽한 감정을 펴기에 족하다.
是日也 天朗氣淸 惠風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이날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았으며 은혜로운 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우주의 광대함을 우러러보고 고개숙여 만물의 무성함을 살피면서
所以遊目騁懷 足以極視聽之娛 信可樂也
자유롭게 눈을 놀리며 마음가는 대로 생각을 달려보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을 다할 수 있게 되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夫人之相與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며 한평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이는 회포를 끌어내어 벗들과 한방에 마주앉아 이야기하기도 하고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雖趣舍萬殊 靜躁不同
또 어떤 이는 자기에게 기탁되어 있는 사상을 근거로 육체의 밖에서 마음대로 놀게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람들은 비록 취향이 만가지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같지 않으나
當其欣於所遇 暫得於己 快然自足
저마다 자신이 취한 경우가 기쁘게 느껴지는 때에는
잠시나마 자기 뜻을 얻어 스스로 흡족하여
不知老之將至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
장차 노년이 다가오리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낸다. 그러나 그가 즐기는 일에 권태를 느끼거나 또 자신의 감정이 그 일에 따라 옮기어 가면서 변하게 되면 여러가지 감회가 이어 나온다.
向之所欣 면仰之間 以爲陣迹
이전에 즐거웠던 일이 짧은 순간에 낡은 과거의 자취가 되어버리니
猶不能不以之興懷 況脩短隨化 終期於盡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목숨이 길건 짧건 모두 자연의 조화를 따라 마침내는
모두가 끝에 이르게 되는 데에야!
古人云 死生亦大矣 豈不痛哉
옛사람이 말하길 "죽고사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다." 고하였으니
이 어찌 가슴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나는 옛사람들이 가졌던 감회를 일으켰던 까닭을 알게 될적마다
마치 두 개의 부절을 하나로 맞춘 듯 내 생각과 똑같은 것을 깨닫는다.
未嘗不臨文嗟悼 不能諭之於懷 固知一死生爲虛誕
그러니 고인의 문장을 대할 때마다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고 마음을 달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죽고 사는 일이 같은 일이라는 말이 허황되고
齊彭상爲妄作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悲夫
팽조와 같이 오래사는 것과 어려서 죽어버리는 것이 같다고 하는 말 역시 함부로 지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지금사람들을 볼 때도 또한 지금 우리가 옛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픈 일이다.
故列敍時人 錄其所述 雖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後之覽者 亦將有感於斯文
그래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고 그들의 시들을 수록하였다.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도 변하겠지만 감회를 일으키게되는 이치는 같은 것이다.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 문장에 대하여 감회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현출판사 인터넷 참고
난정서를 접한 지가 몇 해 전이었던가 80년 초반이었던가.
아물아물하다. 몇 번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쓰기 시작하면 하루에 한 번은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써도 외우지는 못했다.
선생님께서 외우라고 하셔서
한 달 동안의 노력 끝에 겨우 외우고 나서 일주일은 아팠다.
그만큼 내겐 쉽지 않았다. 외웠던 시간이 아깝고
잊을까, 지금도 매일 한 번은 외우고 있다.
80년 중반부터 90년 초반까지는 거의 행서를 많이 썼고 작품도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2012년 6월부터 다시 행서를 쓰기로 하고
그동안 배워왔던 행서 법첩을 모두 다시 임서하기로 하였다.
법본이 되는 책 외에 기서를 써 보기도 하였으나
역시 기서는 쓸수록 깊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현재 자신할 수 있는 체는 해서와 예서이다.
그래도 연습량이 부족하면 여지없이 글씨가 무너진다.
내게 잠을 줄일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난 미인인지 잠이 많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눈을 뜨면 훌 가동하는 방법으로 하루를 보낸다.
세월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2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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