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스크랩] 傾國之色

至晟 2014. 9. 25. 17:55

침어, 낙안, 폐월, 수화 (沈魚,落雁,閉月,羞花)

 

 고대 중국역사를 들여다보면 수 많은 황제들이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들에게 빠져들어 바른 정치와 백성들을 멀리하여 나라의 살림은 피폐해지고 심지어 폭정까지 일삼은 폭군이 되어 결국에는 황제의 자리까지 잃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아가서는 그 왕조까지 망해 버리는 경우들도 있었는데 이러한 황제들이 가까이 했던 여인들을 일러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의 미색을 지녔다는 뜻으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일렀다.

 

오 천년 중국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여인들로 사대 경국지색(四代 傾國之色 네 명의 나라 팔아 처먹은 예쁜 년들)의 미인들을 뽑는데 시대별로 보면 첫째가, 지금으로부터 약 삼천여 년 전의 은나라(殷王朝)를 멸망 시켰다는 달기( 기원전 약 11세기경), 두 번째가 주왕조(周王祖- 西周)를 멸망시킨 포사(褒似 기원전 약 7세기경), 세 번째가 춘추시대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西施 기원전 3세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당나라 현종을 망하게 한 양귀비(楊貴妃)가 있다.

 

은나라의 달기는 아주 음란하고 잔인하였으며 한 맺힌 듯한 서리가 내리는 냉랭한 모습을 지을 때가 가장 아름다워 한달기()라 불리었고, 주나라의 포사는 포사의 웃음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하였다 하여 소포사(笑褒似)라 불렀다. 요녀 포사는 천성이 포악하고 황음무도 했던 주유왕의 눈에 들어 궁궐로 들어와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지만 한 번도 웃지를 않았다. 보다 못한 황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제는 포사를 웃게 만들면 천금의 상을 내린다 하였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을 읽어 본 적이 있던 한 신하가 여산의 봉화대에 불을 올리면 오랑케의 침범인지 알고 모든 제후들이 속아 달려 오는 모습이 재미 있을 것이라 하여 황제는 그 말을 듣고 포사와 여산으로 가 봉화를 올리게 하니 정말로 모든 제후들이 허급지급 달려왔다. 포사는 그 모습들을 보고 크게 웃음을 지었다. 황제는 기뻐하고 그 신하에게 약속대로 천금의 상을 내렸다. 천금으로 웃음을 산다(千金笑買)는 고사성어도 여기에서 나왔다. 나중에 신나라의 제후가 포사로 인해 황제에게 쫓겨난 자신의 딸 신후의 원한을 갚고자 흉노족과 연합하여 왕성(王城 )으로 처 들어오자 황제는 급히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은 한번 속지 두 번 속나 하고 오지를 않으니 황제는 흉노의 손에 죽고 포사도 목을 매어 자진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황제에게 변방으로 쫓겨났던 태자가 황제가 되어 낙읍으로 천도를 하니 서주시대(西周)가 끝나고 동주시대(東周)가 시작된다.

 

서시는 월()나라의 마타하리로써 가슴앓이 병이 있어(X-ray 및 혈액검사에서 만성 신경성 역

류성 식도염으로 판정) 항상 손을 가슴에 얹고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 병자 같은 가련한 모습이 천상의 선녀보다도 더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병서시(病西施)라 불렀는데 월나라의 모든 처녀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들이 서시처럼 보이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얼굴을 찌푸리는게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나온 유명한 고사성어들이 많은데 서시봉심(西施奉心-서시가 가슴을 쓰다듬는 아름다운 모습을 흉내를 다 웃음거리가 된다는 뜻, 즉 꼴값 떨지 말라는 뜻.), 서시빈목(西施嚬目-서시가 눈 쌀을 찡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흉내 내다 웃음거리가 된다는 말),

 

그리고 침어(沈魚)란 말은 서시가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뻤던지 물 속에서 보고 있던 물고기들이 뿅 가버려서 서시의 모습을 쳐다보느라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려 물속에 가라 앉았다는 고사성어로 서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뻥 좀 섞어 표현한 고사성어이다. 마지막으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사 자 성 어는 월 나라의 왕 구천이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참패하여 오나라의 왕 부차의 노예로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하였다. 장작개비 위에 누워서 자고, 쓰디쓴 쓸개를 씹어가며 속으로는 부차 이 개새끼 가만 나두는지 보자 하면서 참고, 또 참으며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도 밖으로는 부차에게 아양도 잘 떨고 김밥도 잘 싸서 부차의 아량으로 나중 월() 나라로 다시 돌아 올 수가 있었다. 돌아와서는 전국적인 아이돌 오디션을 열어 서시를 발탁해서 TAFE에서 마담 Dipoloma 과정을 수료시킨 후 월 나라로 보내어 미인계(美人計)로 오왕 부차를 뿅가게 만들어 나라살림을 완전히 조져놓게 하고 이십 년 만에 박살을 내어 멋지게 복수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가시나 에게 푹 빠져서 나라도 망쳐 먹은 오왕 부차를 보고 다른 왕들에게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교훈을 내린 덕산거사(德山居士)의 짧은 시 한 수는 두고두고 중국 남성들의 교감이 되었다.

 

女是妖物  勿而接近  여시요물 물이접근

若不打三夜也 化狐得羽昇天  약불타삼야아 화호득우승천

여자는 요물이다 가까이 하지 말라.

사흘 밤만 안 때리면 여우가 되어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간다. 

 

()나라가 오()나라를 정복할 때 선봉에 서서 큰 전공을 세운 부대가 바로 월나라 방위들의 도시락 부대였다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기록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朴統 중국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방위를 창설 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당나라 현종을 망하게 한 양귀비(楊貴妃-본명 양옥환)는 술에 찌들어 필름 끊긴 모습

이 가장 아름다웠는데 그래서 얻은 애칭이 취양비(醉楊妃)였다. 현종의 야사(野史)에 의하면 양

귀비는 원래는 현종의 18번째 아들의 비()였는데 시아버지인 현종과는 가족대항전 골프 컴피티션에서 처음 만나 바람이 나서 왕자와 이혼하고 현종(玄宗)의 첩이 된다.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 해보자면 현종이 드라이버로 티샷을 할 때 삑사리가 났는데도 뒤에서시아버님 굿샷!하고 애교 떠는 그 모습에 뽕 가서 현종이 양귀비가 하는 퍼팅은 5m이내는 무조건 O.K를 주자, 이를 눈치챈 현종의 캐디가 대가리를 굴러 왕자하고 양귀비하고 이혼을 시킨다. 집 나온 양귀비는 안티 악플들 때문에 일단은 백담사 같은 곳에서 여도사(女道士)로 잠시 잠적을 해 있다가 현종의 비()로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컴백을 한다.

 

또 다르게 고대 중국 사대미녀를 칭하는 말로 침어, 낙안, 폐월, 수화 (沈魚,落雁,閉月,羞花)라는 말이 있다.앞서 말 한 바와 같이 침어(沈魚)란 서시를 말하며, 낙안(落雁)은 왕소군의 미모에 나르던 기러기가 떨어진다는 말로써 한나라 비운의 미녀 왕소군(王昭君)을 가리키며  폐월(閉月)은 초선(貂嬋)의 미모에 달도 모습을 감추었다는 뜻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의 여인이었던 초선을 나타내며, 수화(羞花)는 양귀비의 미모 앞에서는 꽃도 부끄러워  그녀의 미모를 칭송하는 뜻이다.

 

왕소군의 전해지는 이야기는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 )때 궁녀로 궁에 들어간다.  왕소군은 궁에 들어간 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황제의 총애를 얻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왕소군이 원제의 눈에 들지 못한 데에는 억울한 사연이 있었다. 당시 중국 전역에서 선발되어 입궁한 궁녀들은 그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황제로서도 수 많은 궁녀들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었다. 이에 원제는 황실 화공인 모연수(毛延壽)라는 자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후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인을 간택했다.

 

그러니 집안에 돈이 많거나 후원자가 있는 궁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공에게 뇌물을

 주며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허나 왕소군은 집안이 가난했을 뿐만 아니라 굳이 뇌물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용모를 실제보다 예쁘게 보일 생각이 없었다. 이런 그녀에게 모연수는 돈을 주던지 성상납을 하면 잘 그려주겠다고 제의를 했지만 거절을 당하자 앙심을 품고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아주 평범하게 그린 후 얼굴에 큰 점까지 찍어 놓았다. 이렇게 왜곡된 초상화를 본 황제는 당연히 왕소군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흉노(몽고족)의 통치자인 호한야(呼韓邪) 선우가 중국에 화친을 청해왔다. 그는 관례에 따라 황제에게 한나라 공주나 후궁에게 장가를 들고 싶다고 했고 원제도 흔쾌히 승낙했다. 당시 대부분의 궁녀들은 선발을 두려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나라에서 곱게 자란 여인이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유목민의 땅에 들어가 평생을 산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제가 혼인상대를 고르기로 한 날 원제는 미리 궁녀들 중 보내기가 아까운 미녀들은 모두다 다른 곳으로 빼돌려 놓았다. 흉노의 왕은 궁녀들 중 왕소군의 미모에 한 눈에 반해 왕소군을 택하고 원제에게 결혼식을 부탁 하였다. 원제는 길일을 택해 장안성에서 호한야 선우와 왕소군의 성대한 결혼식을 치러주었다. 그러다 왕소군이 인사를 올릴 때에야 그녀의 빼어난 용모와 우아한 기질을 알아본 황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황궁에 들어서자 황궁 전체가 밝아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미모에 욕심이 생긴 원제가 왕소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을 파기할 경우 호한야 선우의 신뢰를 잃을까 두려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당시 흉노로 떠나는 그녀에게 원제가 하사한 이름이 바로 소군(昭君)이었다.소군이란 말의 의미는한나라 황실과 황제를 빛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왕소군을 그린 왕실 화공은 열 받은 황제에 의해 처형되었다. 야사에 따르면 소군이 국경을 나갈 때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외롭게 살아갈 생각에 슬픔이 물밀 듯 밀려오자 가슴에 품었던 비파로 출새곡(出塞曲 변방을 나서는 노래)이란 곡()을 연주해 울적한 마음을 풀었다. 이때 뜻밖에도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이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에 잠시 날개 짓을 잊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후대에 미녀를 지칭하는 단어로 알려진 낙안(落雁)이란 말은 바로 이렇게 유래한 것이다. 왕소군의 무덤은 옛날 흉노땅이던 내몽고에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가을에 접어든 이후 북방의 초목이 모두 누렇게 시들어도 오직 왕소군의 무덤만은 푸르름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푸른 무덤이란 뜻의청총()이라 불린다고 한다.

 

김종필씨가 박통에게 찬밥 신세를 당할 적에 인용하여 더욱 유명해진 글귀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도 왕소군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로써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지은 시() 소군원(昭君怨 - 왕소군의 한)에서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나지 않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라고 오랑케 땅에 사는 왕소군의 슬픈 심정을 시로 나타낸 싯구이다.

 

삼국지에 여포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초선의 이야기는 이렇다. 후한(後漢)말 십상시의 난으로 하룻밤 사이 2천명의 환관들이 몰살당한 낙양궁궐은 난리가 난다. 난리통에 나이 어린 황제가 서둘러 궁을 빠져나가니 옥쇄도 사라져버린다. 이 와중에 동탁이 어린 황제를 내세워 어부지리로 권력을 잡으니 세상은 혼탁하고 왕조는 찬탈된다. 동탁의 전횡을 보다 못한 제상 왕윤이 조조에게 칠성보도를 주며 동탁을 암살할 것을 부탁하지만 실패한 조조는 멀리멀리 도망을 가버린다.

 

왕조를 찬탈한 동탁을 힘으로 당해 낼 수가 없어 왕윤은 전형적인 미인계(美人計)의 계략을 꾸민다. 왕윤에게는 천하절색의 가기(춤추는 기생) 초선이 있었다. 사적인 업무로 왕윤의 집을 찾았던 무장 여포는 왕윤의 수양 딸이라는 초선에게 마음이 빼앗겨 수시로 왕윤의 집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마음을 주고 받은 두 사람은 왕윤에게 결혼을 허락 받는다. 그러나 어느 날 왕윤의 집을 불시에 찾아온 동탁은 초선의 미모에 완전히 필이 꽃혀 자기에게 달라는 소리는 못하고 허수아비로 있던 황제에게 시집을 보내자고 하고 여포에게 양보를 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 동탁은 초선에게 음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왕윤은 초선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 왕조를 위해 동탁을 제거하는 계획을 이야기 하고 부탁한다. 왕윤은 동탁의 양자이자 사나운 들짐승 같은 최고의 무장이었던 여포(呂布)와 결혼 약속을 한 초선을 늙은 동탁에게 넘겨버린다.

 

늙은 동탁의 여자가 된 초선이 젊은 여포에게 눈물로 설움을 하소연하니, 동탁의 양자였던 여포는 양부 동탁을 죽이는 패륜을 저지른다. 초선이 동탁에게 가기 전 왕윤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후원의 뜰에서 달을 보고 절을 하는데, 달이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지라 이 모습을 본 왕윤이 초선의 미모를 이렇게 표현한다. "초선의 미모에 달도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구나(폐월)!!" 후일 동탁의 수하 곽정과 이각이 반란을 일으켜 낙양을 포위하자 여포는 도망가지만 강직한 사도 왕윤은 장안을 떠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 세인들은 여포가 도망가고 왕윤이 죽은 뒤 초선은 다시 조조에게 농락을 당하는 비운의 여인이었다.

 

현대에 와서 중국대륙의 미인상은 기준이 고대중국과는 많이 달라졌다. 현대 중국대륙을 대표하는 사대미인이 있으니 바로 리수웨이싱(李水性), 리리실(李如實), 센시런(沈慈仁), 그리고 찐허밍(金慧明)이 그 들이다. 

 

喝茶 ! (헷소리 그만 씨부리고 차나 한 잔 하시게나.....)  

2008. 12.  12.

 

출처 : 용
글쓴이 : butyyioung 원글보기
메모 :